버스를 타고 뉴욕에서 떠나온지 13시간 째. 굳이 나이아가라로의 장거리 버스를 택한 이유는 황량한 고속도로 위를 달려보고 싶어서였다. 반으로 접어놓은 듯 평평한 대지가 끝없이 펼쳐져있는 풍경은 흔히 볼 수 있는게 아닐테니까. 조너선 캐럴의 소설에서처럼 트럭은 경적을 울리지 않아도 위엄스럽고. 거대한 금속 몸체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은 사진으로 남기기도 전에 성급히 어두워져 나는 마음이 조급하다. 모든 것을 계량해서 크고 반듯한 이 곳은 아낄게 없으니 자투리도 없고 정감도 없이 다만 허하니 호퍼의 침침한 그림만 같다. 덩달아 쓸쓸해지려고 한다.

마음수련을 위해 옷방정리 감행. 촬영용이라해야 납득이 될만한 엉망진창의 빈티지 아이템들을 입었다 내려놨다 걸쳤다 벗었다. 저런걸 평소에 입으려면 런던에 사는 열 일곱살짜리 워너비 패션블로거 쯤이나 되어야 할거야.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옷방 대방출에서도 살아남아 거진 열 두해를 살아남은 아이들이다 보니, 미련없이 잘 사고 잘 버리는 속물의 심성임에도 분명 앞으로의 어느 TPO와도 안 맞을 걸 알면서도 끌어안고 있게 되더라. 그래도 오늘은 엄마가 선물해주신 플라워패턴의 블랙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꽤나 단아한 클러치를 옆구리에 끼우고 개화기의 중국 여인처럼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싶구나.

오직 당신 뿐 by 몸과 마음

길고 어두운 바에 나란히 앉아서 목소리를 점점 작게 작게, 그래서 무슨 말인지 놓치지 않으려고 어깨가 서로 겹쳐지고, 그 좁은 사이로 진토닉과 향수와 체취가 뒤섞이며 드디어 따뜻한 손이 무릎 위로 살포시 올라갈 때. 그렇게 캐미스트리가 번쩍하고 일어날 때.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갔다.
정신차리고 보면 야금야금 속절없이 가버리고 마는 봄날, 봄의 초입에서 나는 스물 몇 살에 봤던 이 영화를 다시 봤다. 그 때는 영화 끝나면 라면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영화관을 나서서 정말 라면을 먹었고, 서른 두 살이 된 지금도 무지하게 라면이 먹고 싶다. 그 때랑 지금이랑 같고도 다른 라면.

때리면 울고 얼르면 웃고, 그 반응이 너무 정직해서 안그래도 재미없는 그 남자의, 가족에게 인사드리러 가자는 말에, 여자 정색을 하며 “상우씨 나 김치 못담궈.”라고까지 말해도 못 알아듣는 그 순진함이 갑갑하고 부담스러웁다. 그리고 그 명백한 거절의 말에도 “내가 김치 잘 담그니까 괜찮아”로 대꾸할 수 밖에 없는 남자. 자존심이야 뭉게지든 어찌되든, 내 하고픈 말 다 해버리면 후회는 없을 것 같으니까 일단 지르고 보는 건데. 그 사람은 나를 눈치없고 순진해서 부담스럽덴다. 그렇게 나는 영화를 보며 은수와 상우를 번갈아 오갔다. 

그리고 연휴 끝자락에 라면을 하나 삶아 먹고 나서, 필요 이상으로 뭔가를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한껏 살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배워보는 관계의 치트키 몇 개를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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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최근에 제일 좋았던 음악이 무어냐 물어보니 걸그룹 멤버아이가 들척지근하게 리메이크한 노래 제목 하나를 대답하더라. 당황스러워 잠시 웃었고, 어떤 사람들에겐 만인은 평등하되 취향은 평등치 않다는 것을 기분나쁘지 않게 설명하려고 조금 애썼다. 얼굴을 마주하거나 했으면 쉬웠을텐데. 비죽 올라간 입꼬리와 살짝 찌그러진 양미간이 대신 대답해주었을것을. 

갑자기 쌀쌀해진 바람에 거위털 이불의 봉인을 풀다가. 이 이불을 덮고 났던 몇 번의 앓이가 생각났다. 불같이 열이 나 끙끙거려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잘 빨아 말려놨어도 여름 습기를 머금은 이불에 페브리즈를 뿌리며 켜켜이 묵은 마음도 산뜻해지고 싶다.

Tangled by 검정치마

예전과는 무언가가 달라진 여름. 서른 하나에 처음으로 까맣게 그을린 얼굴. 분홍색 립스틱으로 경쾌함을 위장했던 오늘은 이 노래가 유난히 듣고 싶었고. 집에 오자마자 한껏 부풀려진 머리를 손가락 사이로 대강 쓸어내리며. 이어폰을 잃어버린 며칠간을 보상하듯 집안 곳곳에 소리를 채웠더니. 음과 음 사이의 빈 공간은열어둔 창문의 빗소리와 왜인지 모를 서운함이 채워주네. 응. summer’s never coming again.  

결국 갱생프로젝트는 불발로 끝나고. R.I.P Amy Winehouse


젊은 우리 사랑 by 검정치마

기다렸던 검정치마 2집. 조휴일 표 꼭지 돌아버리게 하는 가사는 역시 그대로네.
젊은 피가 젊은 사랑을 후회 할 수가 있냐고. 

한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나서 울어본 사람 또 있었구나. 처음엔 냉골에 옹송그리고 앉아 왜 엄마 말대로 물을 졸졸 틀어놓지 않았을까, 망할 놈의 외출모드 따위 같은 자책으로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다가. 그렇게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서러워서 지지리궁상 오만가지 잡 생각이 다 드는거야. 해빙기사의 바가지부터 남의 집살이의 설움은 기본이고, 너무 추우니까. 온기가 그리우니까, 울다보면 지치고 위로 받고 싶으니까 누군가에 의해 따뜻했던 순간들이 조각조각 기억나는거지. 성냥팔이 소녀처럼 말야. 그렇게 잠시나마 미소짓다가, 불현듯 내 주위의 시공간이 보일러를 얼려버린 이 날씨만큼이나 차가워져버렸다는 게 기억나면 또 왈칵.

그러니까, 보일러는 마음에 드는 보험 같은거야.
고장내거나 가스비를 밀리면 안돼.   




그게 아니고 by 10cm

어두운 밤 골목길을 혼자 털레털레 오르다 
지나가는 네 생각에 내가 눈물이 난 게 아니고
이부자리를 치우다 너의 양말 한 짝이 나와서 
갈아 신던 그 모습이 내가 그리워져 운 게 아니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울지

아침에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막 짜증내고 화내셔서 뭔 일인가 집에 가서 물어봤더니 내 참 꿈에서 나랑 싸워서 꼴보기 싫으셨다고 ㅋㅋㅋ 내가 갑자기 결혼한다고 왠 남자를 데리고 와서 준비도 안되었는데 담달에 식 올린다해가지고 어이가 없었다신다. 그 와중에도 신랑 잘생기고 키크냐고 묻는 나는 또 뭔가. 근데 엄마가 잘생기고 키컸데 ㅋㅋㅋㅋ 앗싸 ㅋㅋㅋ

집에 오다 배가 넘 고파서 문 연 밥집도 없고 학교 앞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삼각김밥/도시락 전멸, 컵라면도 비싼거만 몇 개 남았더라. 요새 돈 없는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좀 짠하데.. 결국 옆 블럭에 편의점에서 하나 남은 삼각김밥이랑 우동사다 드링킹. 그래도 아직 좀 출출한데, 이런 걸먹고 버티는 한창 나이의 아이들이라니. 대학교 때 900원짜리 콩나물간장밥도 제정신으로 먹긴 좀 그랬었지. 등록금대출받고 용돈하느라 알바하고 시간없어 돈버리고 성적나빠지고 어쨌든 취업하면 그 순간부터 워킹푸어의 길로…

Don’t you remember by Adele

When was the last time you thought of me? 
Or have you completely erased me from your memory? 
I often think about where I went wrong, 
The more I do, the less I know.

Why don’t you remember?

The Last Trick by Anja Garbarek 

I get up start crawling Into the same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Smelling the plastic, smelling the spit
And smelling my own breath

This is the last trick i’ll do
Sound can be seen
This is the main title
Briefly shaking

꽤 이상하고 한심하고 좋은 기분의 일요일 오후.

완연한 봄이 되어주소서. 조금 서둘러도 좋소.

완연한 봄이 되어주소서. 조금 서둘러도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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